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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항공기 드론 역사 전투 정찰용 드론

by 상상브로스 2024.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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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항공기는 군사적 용도로 시작되었다. 현재 정의하는 무인항공기에 가까운 형태는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수명을 다한 낡은 유인 항공기를 '공중 표적용 무인기'로 재활용하는 데에서 만들어졌다. 냉전 시대에 들어서면서 무인항공기는 적 기지에 투입돼 정찰 및 정보수집의 임무를 담당했고,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기체에 원격 탐지 장치, 위성 제어장치 등 최첨단 장비를 갖춰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곳이나 위험지역까지 그 영역을 확대하게 됐다.

MQ-9 리퍼  공군용 드론

 

나아가 공격용 무기를 장착해서 지상군 대신 적을 공격하는 공격기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과학기술, 통신, 배송, 촬영 등 다양한 분야에 확대되어 사용되고 있다.

리퍼는 조종사와 센서 담당자 2명이 원격조종한다.

무인항공기의 전신

1903년 유인항공기 최초의 비행이 있기 전에 원시적인 무인항공기가 전투와 정찰용으로 사용되었다.


대표모델 : Bombing by Balloon, Perle's Aerial Bomber, Eddy's Surveillance Kite


최초의 형태는 Bombing by Balloon으로 1849년 오스트리아에서 발명됐다. 열기구에 폭탄을 달아 떨어트리는 방식이었고 베네치아와의 전투에서 실제로 사용했다. 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기구가 있었는데, 남북전쟁 중인 1863년 2월에 뉴욕 출신 찰스 팔 리가 무인 폭격기 특허를 등록한 Perle's Aerial Bomber라는 열기구이다. Perle's Aerial Bomber는 열기구로서 폭탄 바구니를 실어 타이머에 맞춰 폭탄을 떨어트리도록 만들어졌다. 이후 1883년에 더글러스 아치볼드가 Eddy's Surveillance Kite를 개발하여 최초의 항공사진을 찍는 데 성공했다.

공군용 드론 Anakonda를 발사 장면

1910년대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 최초의 무인항공기가 나는데 성공했다. 무인항공기는 정찰뿐만 아니라 전투용으로서의 가능성도 보였기에 미국을 필두로 여러 나라에서 무인항공기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연구하기 위해 시작했다.


대표모델 : Sperry Aerial Torpedo, Kettering Aerial Torpedo


1918년에 미국에서 피터 쿠퍼와 엘머 스페리가 Sperry Aerial Torpedo라는 무인항공기를 개발했다. 공중에서 수평으로 비행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을 적용했고, 300파운드의 폭탄을 싣고 비행할 수 있었다. 1918년에는 미국 GM 사의 Charles Kettering이 ‘Bug’라는 폭격용 무인항공기를 개발했다. 폭탄을 싣고 입력된 항로를 따라 자동 비행 한 뒤 목표지역에 도달하면 엔진이 꺼지고 낙하 하는 방식으로 목표를 파괴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무인기였다. 정해진 시간만큼 날아간 후 날개가 떨어져 나가면서 목표물에 떨어지는 방식이었다. 성공률이 낮아서 실전에는 사용되지 못했다.

 

1930년대

제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무인항공기가 중요한 전투 무기로 발돋움했다.

 

대표 모델 : Queen Bee, Radio planes

 

영국에서 최초의 왕복 재사용 무인항공기 “Queen Bee”를 개발하여 400기 이상을 양산했다. “Queen Bee”는 오늘날 “Drone”이라는 용어로 널리 불리는 무인표적기의 원조라 할 수 있다. 공항에서의 이륙을 위해 바퀴를 달았고, 바다에서도 사용하기 위해 플로트를 장착했다. 한편 미국에서도 무인표적기 개발에 착수하여 1930년대 유명한 영화배우이자 무선조종 모형기 취미 광이었던 Reginald Denny가 무선조종 모형기를 표적기로 사용한 대공포 사격의 훈련 유용성을 미 육군에 설득하여, 1939년부터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Radio planes”라는 무인표적기 15,000여대가 생산되었다.

 

1940년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전투용 무인항공기 V-1을 실전에 투입했고 효과가 성공적이었다. 미국은 V-1을 파괴하기 위한 무인항공기를 만들었다.

 

대표 모델 : PB4Y - 1, BQ - 7

 

독일에서 Vergeltungswaffe - 1이 개발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초기에 아돌프 히틀러는 냉각상태로 비행폭탄을 조달했다. V - 1 무인항공기는 부 저음 신호를 발생시키는 추력의 펄스제트 탑재되었다. V - 1은 한 번에 2000파운드의 탄두를 운반 할 수 있으며, 폭탄을 투하 하기 전에 150마일을  비행 하도록 미리 입력되었다. V-1은 1944년에 영국에 처음 투입되었는데 영국 도시에서 900여명의 시민들을 죽였고, 35,000명가량의 시민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한편 미국에서는 V -1에 대응하기 위해 PB4Y - 1과 BQ - 7 무인항공기를 개발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V - 1은 미 해군이 그것에 대항할 수 있는 무인항공기를 개발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미 해군 특수항공기(Spacial Attack Unit - 1)는 TV 가이드 시스템을 이용하여 원격으로 비행하면서 폭발물 25,000파운드를 옮기기 위해 PB4Y-1와BQ-7로 변환되었다. 이 무인항공기는 2000피트 상공을 나는 비행기에 탑승하면서 독일군의 V - 1의 경로를 설정하는 두 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이륙했다. 승무원들은 착륙해 있는 V - 1이 회수되기 전에 V - 1을 제압했다. 이는 비록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V - 1을 제압하는 데 성공적이었다.

 

1950~60년대

이전까지는 전투용으로 사용되던 무인항공기가 베트남전을 거치면서 적진 감시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대표 모델 : Fire bee, AQM-34 Ryan Fire bee, D - 21

 

1950~60년대 미국은 “Fire bee”라는 제트추진 무인기를 개발하여 베트남에서 적진 감시 목적으로 운용했다. “Firebee”는 감시 무인기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32] 이는 AQM-34 Ray Fire bee라는 무인항공기의 전신이 된다. 1960년대 미 공군은 최초의 스텔스 항공기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정찰 임무용으로 전투용 무인항공기로 변경하겠다고 약속했다.

 

엔지니어는 엔진의 공기흡입구에 특별히 제작된 스크린을 씌우고, 기체 측면에 레이다를 흡수하는 담요를 위치시키고, 새로 개발한 레이다 도료로 항공기 기체를 가림으로써 레이다 신호를 줄였다. 그 결과 AQM-34 Ryan Firebee라는 무인항공기를 개발했다. 이 무인항공기는 DC-130에서 공중에 투입되었으며, DC-130에서 조종했다.

 

작전 후에는 안전한 지역으로 인도되었고, 헬리콥터로 다시 실어 왔다. AQM-34 Ryan Firebee는 비밀 모니터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1964년 10월부터 1975년 4월까지 1000대 이상의 무인항공기가 34,000회가량 동남아시아를 날아다니며 감시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일본, 한국, 베트남, 태국으로 감시 범위를 확장하고, 주간 및 야간 감시, 전단을 뿌리는 임무까지 수행했다. 북베트남과 중국 전역의 대공 미사일 레이다를 감지하기도 했다.

 

AQM-34 Ryan Fire be는 신뢰성이 높았는데, 베트남 전쟁 중에 날려 보낸 항공기 중 83%가 다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또한, 미 공군은 AQM-34 외에도 마하 3의 속도로 90 비행할 수 있는 “D-21”이라는 극초음속 무인기를 극비 프로젝트로 개발하여 배치했다. 당시 소련과 냉전 시기였기 때문에 고품질의 정찰 이미지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었다.

 

하지만 1960년대 러시아의 그레이파워서의 U-2라는 대공사격 기가 무인항공기를 격추해서 여러 문제가 많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은 록히드사의 초고속 항공기와 스텔스를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로 1965년 탄생한 것이 록히드사의 D - 21이다. D - 21은 마하 4의 속도를 가진 역사상 가장 빠른 항공기였다. D - 21은 유인항공기 M - 21에 의해 상공에서 방출되었고, 스텔스 기능이 포함되어 레이다에 감지되지 않았다. 또한 8,000피트 상공에서 날았으며, 3,000마일의 범위를 감시했다.

 

하지만, 미국은 베트남전 이후 UAV 개발 투자가 약해지면서 무인항공기 개발 경쟁의 주도권을 이스라엘에 내주었다.

 

1970년대

Fire bee가 베트남에서 성공을 거두자 다른 나라에서도 무인항공기 개발을 시작했다.

 

대표 모델 : Fire bee 1241, Ryan SPA 147

 

1970~80년대 이스라엘 공군은 새로운 무인항공기 개발을 개척했다. 이스라엘은 세계 최초로 “Decoy” 기만용 항공기를 지칭하는 말소와 무인항공기를 개발하여 사용했다. 이스라엘 공군의 Fire bee 1241은 미국의 AQM-34 Ryan Fire bee 기술에 감명받아 1970년 비밀리에 미국에서 Fire bee 12대를 구입하여 기만 정찰기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 무인항공기는 Decoy라는 새로운 종류의 무인항공기였다. Fire bee는 대공미사일을 피하고 파괴하면서 성공적으로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YMO Kippur War)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쟁 둘째 날, 이스라엘공군은 이집트 방공군의 미사일 32발을 성공적으로 피하고 대 레이다 미사일 11발을 파괴했다.

 

또한, 공중에서 하늘을 공격할 수 있는 무인기로 아랍의 SA-6를 제압했고 및 지상 전차에 유도탄 공격을 유도했다. 그리고 전자전 무인기로 적이 땅에서 하늘을 향해 쏘는 유도탄 레이다를 방해했다. 미국에서는 Ryan SPA 147을 개발했다. 1970년 RC-121 유인항공기가 격추당해 조종사가 사망함으로써 미국은 적의 미사일반경에서 벗어나는 높은 고도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무인항공기를 개발하는데 착수했다. 개발 임무를 맡은 라이언항공은 60,000피트 상공에서 적의 라디오 메시지를 가로채는 임무와 사진을 찍는 임무를 수행하도록 만들어졌다. SPA 147은 300파운드의 카메라를 달고 8시간 높은 고도에서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1980년대

1970~80년대에 무인항공기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고 중요한 기술들이 개발됐다.

 

대표 모델 : Scout, Pioneer

 

1980년대 이스라엘 공군은 새로운 무인항공기 개발을 개척하였으며,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미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이스라엘제 무인항공기를 도입할 정도로 성공했다. 1978년 이스라엘 항공사(Israel aircraft industries)는 Scout이라는 무인항공기를 개발했고 1982년 실전에 투입하는 데 성공했다. Scout은 피스톤 엔진이 탑재됐고, 유리섬유로 만들어진 13피트의 날개가 달렸다. 작은 레이다 신호를 발산하는 데다 크기가 작아서 거의 격추가 불가능했다. 그리고 중앙텔레비전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 360도 모니터링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스라엘, 레바논, 시리아 사이에 일어난 베카계곡 전투에서 투입되어 17개의 시리아 미사일 시지중 15개를 파괴하는 것을 도움으로써 큰 성과를 거뒀다. 1980년대 말에는 Pioneer라는 저렴하고 가벼운 무인항공기가 만들어졌다. Pioneer는 로켓 부스터 엔진을 탑재하여 땅이나 바다 위의 배급 판에서도 이륙할 수 있었다. 걸프전(Gulf War)에서 533회 출격함으로써 임무를 수행했고, 모니터링 작업에 특히 효과적임으로 입증되어 현재에도 이스라엘과 미국 등지에서 사용되고 있다.

 

1990년대

1990년대의 무인항공기는 미국과 유럽에서부터 아시아와 중동 전역에서 군용 첨단무기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지구환경을 감시함으로써 평화에 기여했다.

 

대표 모델 : Firebird 2001, Pathfinder, Darkstar, RQ-1 Predator, RQ-4 Global Hawk, Helios


이스라엘에서 정찰용 무인항공기 Firebird 2001을 개발했다. Firebird 2001은 글로벌 차별화 시스템 기술(Global positioning system technology), 지리정보 시스템 대응(Geographic information systems mapping) 및 전방 갈 때 카메라를 이용해 산불의 크기와 속도, 주변,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전송할 수 있다.

 

1990년대에는 미국도 무인항공기 개발에 활발하게 참여하여 5대의 새로운 모델을 개발했다. 먼저 Pathfinder는 환경조사를 위해 개발된 태양전지씩의 초경량 연구 항공기이다. 작은 센서를 이용해 바람이나 날씨 데이터를 수집하고 고해상도의 디지털이미지를 찍어서 전송할 수 있다.

 

다음으로 Darkstar 는 45,000피트 상공에서 날면서 스텔스 기능을 가질 것으로 기대된 무인항공기이다. 미국방위고등연구계획국(Defenc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의 주도로 무인 정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최근 재정적인 문제로 개발이 취소되었다.

 

다음으로 RQ-1 Predator는 순수 정찰용으로 개발되었으나 일부는 대전차미사일을 탑재하여 성공적으로 임무 수행을 하고 있다. RQ-1 Predator는 발칸반도에서 가치를 인정받았고, 최근에는 아프가니스탄과 중동에서 인정받고 있다.

 

다음으로 RQ-4 Global Hawk는 세계적인 무인항공기회사 텔레다인 라이 언사가 만든 무인항공기로서 감시하고 싶은 곳이면 언제든지 감시할 수 있다. RQ-4 Global Hawk는 116피트의 날개를 가졌으며, 최대 65,000피트 상공에서 모니터링과 데이터전송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Helios는 대기 연구 작업과 통신 플랫폼 역할을 하는 무인항공기이다. Helios는 아직 개발 중인데 100,000피트 상공을 비행하는 것과 24시간 비행 중 14시간 이상 50,000피트 위에서 비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00년대

군사용 무인항공기는 첨단기술로 발전했고, 군사 목적 이외에도 촬영, 배송, 통신, 환경 등 여러 분야로 뻗어나가고 있다.


대표 모델 : RQ-4 Global Hawk, Taranis, Helicam, Prime Air, Solar 50

 

미군이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Global Hawk는 현존하는 최고의 성능의 무인정찰기이다. 최대 20km 상공까지 비행할 수 있고, 지상에 있는 30cm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전략무기이다. 35시간 동안 운용이 가능하고, 작전반경이 3000km에 이르며, 첨단 합성 영상 레이다(SAR)와 전자광학·적외선 감시장비(EO/IR) 등으로 날씨와 관계없이 밤낮으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 지상의 조종사 명령에 따라 비상시 임무부여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임무가 설정되면 이륙, 임무 비행, 착륙 등이 자동으로 이뤄진다.

 

영국에서는 2013년에 Taranis라는 자국 최초의 무인항공기가 개발되었다. 2005년부터 개발에 착수하여 2013년에 첫 비행을 마쳤다. 비밀리에 연구, 개발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항은 알 수 없으나, 비행 속도는 초음속이며, 스텔스 기능을 갖추었다.

 

촬영 분야에서는 헬리캠이라는 무인항공기가 사용되고 있다. 헬리캠은 ‘Helicopter’와 ‘Camera’의 합성어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을 촬영하기 위한 소형 무인 헬기로 본체에 카메라를 달고 원격으로 무선 조종할 수 있다. 그리고 무인항공기는 배송 분야에서도 이용되고 있다. 아마존의 Prime Air는 무인 드론이 배송지의 위치를 확인하고 날아가서 택배를 집에 배송해 주는 소형 무인항공기이다.

 

마지막으로 통신 분야에서는 타이탄 에어로스페이스의 Solar 50이 있다. Solar 50은 보통 무인기 운항 항로보다 배는 높은 2만m 상공에서 날 수 있다. 태양광을 동력으로 하기 때문에 충전 없이 수년간 사용할 수 있다. 훨씬 싼 값에 다목적 인공위성처럼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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