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영어: Trot)는 대한민국의 음악 장르이다. 정형화된 반복적인 리듬과 펜타토닉 스케일 음계(오음음계), 그리고 한국 민요의 영향을 받은 떠는 창법이 특징이다. 또한 트로트는 미국의 춤곡인 폭스트롯(영어: Foxtrot)이 어원이며, 한국, 일본, 미국, 그리고 유럽 국가들의 다양한 음악들이 혼합하여 탄생했다. 한국 대중가요의 역사는 192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초창기에 있어서는 《사의 찬미》(1926)의 윤심덕을 비롯해 《낙화유수》(1927, 김서정 작사/작곡)의 이정숙이나 《세 동무》(1928)의 채종원, 《암로(暗路)》(1930)의 김연실, 그리고 《봄노래 부르자》(1930, 김서정 작사/작곡)의 채규엽 등이 대표적인 가수였다. 한편 일본 엔카의 번역·번안 노래도 유입해서 1930년대 중반에 대중가요의 양식으로 정착된 것이 트로트다. 특히 ‘라시도 미 파’의 단조 5음계를 사용하거나, ‘도레미 솔라’의 장조 5음계를 ‘라’의 비중을 높여 사용하는 특징은 일본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 이 새로운 양식은 신민요와 더불어 일제강점기 대중가요의 양대 산맥이 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 트로트라는 명칭은 없이 ‘유행가’, ‘유행 소곡’ 등으로 불렸다. 트로트라는 명칭이 정착한 것은 1960년대 중반이다. 1930년대 중후반으로 이르러서는 음반산업과 라디오 방송으로 대표되던 거대 매체가 자리 잡게 되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30년대 중후반 트로트의 주류화를 결정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나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감격시대》 이래 황금심의 《알뜰한 당신》이나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 등이 있다.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을 시행하며 친일 가수들의 활동과 함께 엔카 성향을 띤 노래들이 늘어나게 되었지만 고유의 정서를 담은 노래 또한 유지되고 있었다. 광복 이후 한국에서는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해방 전의 대중가요는 왜색 가요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1949년 대한민국 정부는 왜색가요와 저속가요를 퇴치하고 애국정신을 고취할 노래를 보급할 목적으로 국민 가요보급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1956년에는 문교부와 국민개창운동 추진회의 공동주최로 《왜색풍 가곡 배격, 계몽 강연회》가 개최되었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1947년에 데뷔하여 《신라의 달밤》을 크게 히트시킨 현인은 1950년대까지 활발한 활동을 통해 많은 명곡을 발표하였다. 1950년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전쟁 기간 현인의《전우여 잘 자라》, 신세영의《전선야곡》과 같은 전쟁가요가 유행하기도 했지만, 휴전 이후에는 전쟁의 아픔과 실향민의 비애를 그린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과 같은 곡이 유행했다. 특히 1954년에 이해연이 발표한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한국 전쟁의 아픔을 깊이 담아냈다는 평가를 얻어 크게 히트했다. 한국 전쟁 전후로 월북한 작가들의 작품은 발행금지 조치가 취해지기도 했는데, 작곡가·작사가나 가수의 많은 곡도 발행금지처분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박재홍의 《유정 천 리》와 같은 곡을 비롯해 많은 곡이 1988년까지 발행되지는 않았으나, 인기를 끌어 노래는 불리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1957년에는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대한민국의 대표 가수 이미자가 데뷔했으며, 1959년경부터 LP판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1950년대 후반에는 고학력의 가수가 등장하여 눈길을 끌기도 하였다. [출처 필요] 또한 트로트는 왈츠, 블루스, 탱고, 맘보, 룸바, 부기우기 등과 더불어 ‘리듬’의 하나로 간주 돼 앞에 씌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시에 발표된 《늴리리 맘보》, 《비의 탱고》, 《기타 부기》와 같은 곡들은 트로트 리듬을 기초로 하고 있지 않다. 적어도 1950년대까지 트로트를 하나의 형식이나 장르로 보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트로트는 1960년대 이후 하나의 장르로 굳어졌다. 이 장르가 뽕짝이라는 별칭을 얻은 것도 이 무렵이다. 1960년대 중반 신문이나 잡지에서는 트로트와 뽕짝이라는 말이 혼용되고 있었고, 이 가운데 뽕짝은 비하하는 성격이 강해서 점차 트로트라는 말로 대체됐음을 알 수 있다. LP판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트로트는 한층 더 발전되어 갔다. 특히 1959년에 데뷔한 이미자는 1960년대 왕성한 활동을 하는 가수 중 하나로 손꼽히며 이 시기에서 정상으로 올라 트로트의 중심에서 서 있던 가수다. 그리고 최희준, 김상희 등 고학력 가수들이 등장하면서 학사 출신 가수들이 주목받았다.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다가 데뷔한 현미의 《밤안개》가 인기를 끌었다. 또한 1961년은 한명숙이 발표한 《노란 셔츠의 사나이》가 크게 인기를 끌었으며, 프랑스의 샹송 가수 이벤트 지로나 일본의 하마 무라 미치코 등이 리메이크하면서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권까지 크게 유행하기도 하였다. 1966년에는 《동숙의 노래》로 데뷔한 문주란이 있었는데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가수로 손꼽혔다. 1967년에는 남진이 부른 《가슴 아프게》가 크게 히트했고, 같은 해에는 그의 라이벌이자 후일 국민가수로 불리는 나훈아가 데뷔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두 명의 신인가수가 등장하였다. 그런가 하면 자매 가수들도 많은 활동을 했는데 《워싱턴 광장》, 《울릉도 트위스트》 등을 부른 정씨스터즈를 비롯해 《남성 금지구역》,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등을 부른 이씨스터즈, 《마포종점》, 《삼천포 아가씨》 등을 부른 은방울 자매가 유명하다. 1970년대에는 신인 가수였던 남진, 나훈아가 라이벌 2인 체제를 이루어 대한민국 가요계를 주름잡았다. 이 시기에는 통기타 가수, 포크송 가수 등 여러 장르의 가수들이 대거 등장하였지만 가수였던 남진, 나훈아의 인기가 더 많았기 때문에 트로트가 아직 장악하고 있었다. 특히 남진은 팝 스타일과 빠른 템포의 트로트를 선보였으며 나훈아는 정통 트로트를 주로 노래하였기에 이때부터 트로트는 정통과 정통에서 벗어 나 다양한 음악적 요소로 세분되어 가고 있었다. 문주란은 〈공항의 이별〉, 〈공항의 부는 바람〉, 〈공항 대합실〉 등 공항 시리즈가 인기를 얻었다. 1975년에는 송대관이 직접 작사한 《해 뜰 날》이 많은 사랑을 받아 가수왕에 등극하기도 하였고 1976년에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크게 히트하면서 트로트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1977년에는 그룹사운드 '히식스', '최헌과 검은 나비' 등을 결성해 보컬과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던 최헌의 《오동잎》이 후반에 히트하였고 이성애가 일본에서 데뷔하면서 트로트를 소개했다. 이후 조용필이나 김연자, 계은숙 등의 가수가 일본에서 활동하는 계기가 되었고, 많은 트로트 곡이 히트하기도 했다. 1970년대 말에 조용필이라는 대형 가수가 등장하여 《미워 미워》, 《일편단심 민들레야》 등의 트로트 가요를 히트시켰다. 이 시기에도 다양한 국내 음악들이 자리 잡고 있었으나 무엇보다 트로트가 주류를 이루었다. 특히 트로트계 여성 가수들이 대거 등장하였는데 김수희, 심수봉, 주현미가 대표적이다. 김수희는 작곡가 출신으로 미8군 부대에서 '블랙 캣츠'의 보컬로 활동하여 《남포동 블루스》, 《멍에》, 《잃어버린 정》 등 느린 곡조의 트로트를 히트시켰고 다양한 창법을 트로트에 접목하기도 하였다. 1986년에 대한민국의 국민가요이자 응원가로 유명한 《남행열차》로 많은 인기를 얻기도 하였다. 심수봉은 제2회 대학가요제에서 처음으로 트로트로 출전해 입상 한 계기로 데뷔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였고 《당신은 누구시길래》, 《무궁화》, 《사랑밖엔 난 몰라》 등 자작곡들을 히트시켰는데 1984년,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는 2만 여장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주현미는 약사 출신으로 제2회 강변가요제로 데뷔하여 《비 내리는 영동교》, 《울면서 후회하네》,《눈물의 블루스》등을 히트시켜 1988년, 《신사동 그 사람》으로 MBC 10대 가수상, 제18회 KBS 가요대상 대상, 제 3회 골든 디스크 대상을 수상하였다. 1980년대 후반에는 트로트의 최고 정점을 찍는 시기였다. 1987년에는 당시 여고생이던 문희옥이 《사투리 디스코 메들리》로 360만 장을 판매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면서 데뷔했으며, 1989년에는 당시에 새로운 도시로 떠오르던 남서울 영동을 노래한 《사랑의 거리》를 발표했다. 문주란이 남편과 아내의 삶을 표현한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를 히트시키면서 여러 세대층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일본에서 엔카 가수로 크게 성공한 김연자의 《수은등》, 미8군 부대에서 활동하던 김지애의 《물레야》가 히트되어 트로트를 활성화해주었다. 문성재는 1982년에 《부산 갈매기》를 불렀고 이 노래는 롯데 자이언츠 야구대표팀의 응원가로 쓰이면서 더욱 히트하였다. 그 해 설운도는 KBS 신인 탄생으로 데뷔하였고 데뷔곡 《잃어버린 30년》이 이산가족 찾기 운동의 주제가로 쓰여 많은 사랑을 받았다. 현철은 1989년에 《봉선화 연정》으로 KBS 가요대상 본상을 받으면서 트로트 황제의 위력을 전국에 전파 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태진아는 임종수가 작곡한 《옥 경이》로 가수로써의 두 번째 데뷔하였고 가요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1980년대 말에 미국에서 귀국하여 대성공을 이뤄낸 송대관과 태진아는 트로트 신예로 급상승한 설운도, 오랜 무명 시절을 거쳐 인기를 얻은 현철과 함께 트로트 사국시대를 형성하여 트로트 음악의 부활을 주도하였다. 그들은 이제까지의 정통 트로트를 고수하는 방식과는 약간의 다른 음악적 요소를 접이 시켜 새로운 방식의 트로트를 대중들에게 선보이기도 하였다. 배일호는 농민 출신의 가수로 《신토불이》를 불러 한국산 농산물을 홍보하는 계기가 되어 한동안 코리아 드림 열풍이 불기도 했다. 한편, 여성 가수 중에서 서울 언니로 데뷔했던 방실이가 솔로 가수로 전향하여 음반을 낸 《서울탱고》가 가요계 정상권을 차지하며 트로트의 위상을 떨쳤다. 또한 최유나의 《흔적》, 한혜진의 《갈색추억》, 박윤경의 《부초》 등 서정적이고 단조로운 분위기의 트로트들이 주로 인기를 얻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설 무렵 록, 발라드. 댄스 팝, R&B, 힙합이 대한민국 가요계를 주도하면서 트로트는 상당히 소외되었고 트로트를 고집하던 가수들은 한동안 침체기에 놓이게 되었다. 이 시기에 댄스가수였던 김혜연이 등장하여 기존의 정통 트로트에 여러 음악적 요소를 가미시킨 세미 트로트를 선보였다. 김혜연은 《서울 대전 대구 부산》으로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열풍"을 일으켜 젊은 층들을 확보하며 신세대 트로트 가수로 자리 잡았다. 2000년대 이후 들어 트로트는 어른들의 노래 (일명: 성인가요), 시대에 뒤떨어진 노래로 인식되어 왔는데 김혜연이 새로운 세미 트로트를 시도하게 되면서 대부분의 트로트 가수들도 정통 트로트에서 벗어나 트로트의 다변화를 이끌고 있다. 2004년에 장윤정이 데뷔 함과 동시에 《어머나》로 "어머나 열풍"을 일으키면서 점점 트로트가 신세대들에게 친근감이 느껴지게 되었다. 이 여파로 트로트 음악은 계속 정통이 아니라 퓨전으로 대중에 널리 보급되었다. 그리고 2005년에 박상철이 발표한 《무조건》은 남성들이 회식 자리 등 여러 행사에서 선곡되는 트로트 곡 1위로 자리 잡았다. 2006년에는 박현빈이 《곤드레만드레》로 트로트계 신예로 부상하면서 이 세 가수는 트로트계 새로운 삼인자로 급부상했다. 이들의 탄생으로 많은 젊은 가수들이 트로트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데 윙크, 홍진영, 김수찬, 백수정 등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배출되고 있다. 특히 정통 트로트에 타 장르의 음악과 결합해 트로트를 재조명하는 음악 프로그램 〈트로트 엑스〉가 2014년에 방송되었으며, 2019년부터 TV조선에서 〈내일은 미스트롯〉(여성) 와 〈내일은 미스터트롯〉(남성)이 시즌제 방송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또한 김신영이 트로트 가수 둘째 이모 김다비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정통 트로트 계보도 이어 가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주현미, 문희옥, 김용임, 유지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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