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자기 삶이나 세계의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긍정적인 결과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하는 낙관적인 심리 상태를 말한다. 주로 실현 시간이 불명확하다. 희망은 인류 역사상 많은 문학과 예술의 소재가 되어왔으며 영화 등의 주요 테마이기도 하다. 고유 한국어로는 바람이며, 바램은 비표준어이다. 동사로서, 그것의 정의는 "자신 있게 기대하라"와 "기대로 욕망을 소중히 하라"를 포함한다. 심리학자 찰스 스나이더는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확고한 계획과 결합한, 목표의 존재에 희망을 연결했다. 스나이더는 목표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의 필요성뿐만 아니라 희망과 정신의 의지력 사이의 연관성을 강조하면서 희망과 낙관 사이의 차이는 전자가 개선된 미래로 가는 실용적인 경로를 포함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희망의 반대로는 낙담, 절망, 우울함이 있다. 2009년, 심리학자인 바버라 프레드릭슨은 위기가 닥치면 희망이 저절로 생겨나 사람들을 새로운 창조적 가능성에 열어준다고 주장했다. 프레데릭슨은 자신의 네 가지 다른 영역, 즉 인지적, 심리적, 사회적, 신체적 관점에서 도출된 행복과 기쁨, 용기, 권한 부여와 같은 긍정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매우 광범위한 아이디어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희망적인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작은 엔진과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계속해서 스스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 낙관론은 순진한 '거짓 희망'이 아닌 현실적인 낙관론에 바탕을 둘 때 결실을 본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 심리학에서 목표 추구의 중심성을 비슷하게 주장했었다, 에른스트 블로흐와 같은 철학적 인류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희망은 원하는 목표에 이르는 경로를 도출하고 기관 적 사고를 통해 그 경로를 이용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인식 능력으로 정의되었다. 스나이더는 이 세 가지 요소를 깨닫고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개인들은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한 여러 가지 실행할 수 있는 경로를 상상할 수 있으며, 장애물이 그들의 길을 방해하더라도 인내할 수 있는 희망적인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위니콧은 아이의 반사회적 행동을 "무의식적인 희망" 또는 직계 가족 내 억제가 실패했을 때 더 넓은 사회에 의한 관리를 표현하는 것으로 보았다. 객체 관계 이론은 분석적 전이를 부분적으로 과거의 갈등과 트라우마가 새롭게 다루어질 수 있다는 무의식적인 희망에 의해 동기 부여되었다고 본다. 긍정 심리학 전문가로서, 스나이더는 희망과 용서가 건강, 일, 교육, 그리고 개인적인 의미와 같은 삶의 여러 측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연구했다. 그는 희망적인 생각을 구성하는 세 가지가 있다고 가정했다: 목표 지향적인 방식으로 삶에 접근하는 것. 경로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찾는 것. 기관은 변화를 부추기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 것 등이 있다. 스나이더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람의 결심이 측정된 희망이라는 것을 고려한 "희망 척도"를 제안했다. 스나이더는 어른이 측정한 희망과 아이가 측정한 희망을 구분한다. 스나이더의 성인 희망 척도는 12개의 질문을 포함한다. 각 피험자는 8점 척도를 사용하여 각 질문에 응답한다. 피벡과 해일은 스나이더의 희망 척도와 그들의 성공을 위한 일반화된 기대 척도를 결합하여 희망을 경험적으로 측정한다. 스나이더는 심리치료가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한 암묵적인 지식을 끌어당기면서, 자신의 목표에 집중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나이더는 심리치료가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한 암묵적인 지식을 끌어당기면서, 자신의 목표에 집중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희망 없음', '잃어버린 희망', '거짓 희망', '진짜 희망'을 구분하는 희망에 '전망'과 '현실 파악'이 있는데, 시각과 현실성이 다르다. 당대 철학자 리처드 로타는 희망을 목표 설정보다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는 약속이나 이유의 역할을 하는 미터 서술로 이해한다. 포스트 모더니스트 로타는 기독교 이야기, 공리주의,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과거의 미터 내러티브가 잘못된 희망을 증명했다고 믿는다.;그 이론은 "사회적 희망"을 제공할 수 없다. 그리고 자유주의자는 사회적 희망의 합의된 이론 없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1999년 로타는 사회적 희망이 다시 존재하기 위해서는 "약속의 문서"가 필요하다고 썼다. 세계화의 문제에서 희망은 경제적, 사회적 권한 부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희망은 기독교의 세 가지 신학적 미덕 중 하나이다. 성경의 "희망"은 미래의 보상에 대한 "강렬하고 자신감 있는 기대"를 의미한다. 현대적 용어로 희망은 신뢰와 자신감 있는 기대와 유사하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인들에게 희망의 원천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희망으로 우리는 구원받았다." 홀만 성경 사전에 따르면 희망은 "하나님의 인도 아래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믿을 수 있는 기대"이다. "순례자의 진보"에서는 의심하는 성에서 기독교인을 위로하는 필그림의 진보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반대로 인페르노(단테) 입구에는 "모든 희망을 내려놓아라, 나를 따라 들어가는 그대"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아시아의 일부 지역에 초점을 맞춘 희망은 경제 성장의 추구와 관련하여 세속적이거나 경제적인 물질주의 형태를 취해왔다. 주요 예는 중국의 경제와 인도의 경제 상승이며, 중국의 개념과 관련이 있다. 두 번째 관련 사례는 상하이 세계 금융 센터, 부르즈 칼리파, 타이페이 101의 건설과 같은 신흥 경제국에서 현대 건축의 사용이 증가하여 원산지 국가 내에서 지배적인 희망을 낳았다. 문화적 경계 없이 희망이 넘어가는 혼란스러운 환경에서 시리아 난민 아동들은 창의적 교육과 심리·사회적 지원을 통해 유네스코의 교육사업을 통해 지원받고 있다.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다른 문화 간 지원에는 음식 문화가 포함되어 있으며, 풍부한 문화적 과거에 몰입함으로써 난민들을 트라우마로부터 해방한다.
'Don't worry be happ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공학 (0) | 2023.03.05 |
---|---|
직장에서의 행복과 긍정심리 (1) | 2023.03.05 |
우울감에 대하여 (1) | 2023.03.04 |
행복에 관하여 (0) | 2023.03.04 |
살면서 항상 후회하는 것들 (0) | 2023.03.03 |